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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떻게 피해왔지만, bypass 했지만, 결국結局 은 언젠가 한번 마주치게 되어있는 진실처럼, 그 컴플렉스처럼,
어차피,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몰래몰래 숨겨둔 일종의 complex-inferiority complex 일수도 있는, 의식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괴롭힐 기회만 노리고 있던 그 덩어리처럼,
그렇게 한번은 터져버리고 말던, 어찌보면 한번은 직면해야만 했던 진실이었을수도 있겠지만,
어쩔수없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해왔던 사실만큼, 충분히 응축되고 꾹꾹 눌러담겨 있다가는 이런 식으로 폭발하곤 했겠지,, 하고
위로받아야 하는것인지, 스스로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것인지, 아주 우스워지곤 했다.
2.
부정하려 하여도, 나에겐 스프링처럼 튀어 돌아가게되는 자신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자아自我의 상相 은 존재한다.
내가 가진 자원resource 을 총동원해서 결국 그렇게 돌아가고야 마는 과정을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다.
그건, 단순하다.
어쩌면 그걸 위해 그 자원들을 모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 모든 에너지, 즉 자원 들을, 총동원해서,
세계를, 자연을, 타인을 존중하듯,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끝까지 나에게 의미있을 수 있는 그 사람, 나 자신, 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돌아오고 나면 어쩔수 없이 마음은 편해진다.
의존依存 은, 너무나도, 전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평생.
아주 오래전 알고 지내던 친구의 소식을 듣는 것은 뭐라 말하기 힘든 경험이다. '정확하지는 않아. 아닐수도 있고. 나도 그냥 전해들은거라..' 또다른 친구가 말했다. 더이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뛰어야 하는 것일까 그냥 이렇게, 정확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은채로, 그냥 혼란스러워하는채로 놓아두는것이 옳을까. 이상태라면 그를 동정할 수도 없고, 그를 이해할수도 없고, 그를 떠올리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정리할 수가 없는데, 그 친구에게 다시 확인해달라고 부탁할까,
이런 생각들에 머리가 갑자기 아파왔다. 두통은, 시도때도없이 너무나도 긴장한 근육들로부터 오곤 했다. 죽음은 도처에 널려있다. 길거리를 걸어갈때도,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눈앞에서 죽어가던 광경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차라리 이시간에 동시에 수백만명이 쳐다보고 있는 TV 를 보면서 그 안에 있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공에 날려버리면 좀 덜 초조해질건지,
인생은 바둑같은 것일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나 혼자만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사람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다. 내가 움직이면 상대도 움직인다. 그래서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 불확실성은 때때로 고통스럽다. 생존이란, 누구에게나 노력을 요구한다. 최선을 다하고 밤새 일해도 생존 유지가 안되는 생명들은 널려 있다. 그가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 하는 노력은 그로서는 언제나 최선이었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 그리고 사회가 보기에는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unsatisfactory 한, 그런 존재였을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 자기자신이 판단하는 것이지 '그들' 이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존재가치가 자기에게 무의미하다면 글쎄, 그때는 어떻게 해야 했을지, 그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지만, 대답해줄 수 있을지,
누구나 느끼는 고통은 누군가에게는 더 증폭되고, 고통의 한계는 사실 없기 때문에, 아예 실신해버린 사람처럼, 그에게 해줄 말이 있을지, 점점더 움츠러들기만 했다.
역시 대가의 연주는 누구나 아는 명곡에서 차이가 난다. 하루종일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연주한 알함브라를 주리줄창 듣고 있는데 역시 실력차이가 확연하게 난다. 1. 최고의 연주는 역시 Pepe Romero 라고 하고 싶다. 음색 자체가 아름다울뿐아니라 트레몰로도 완벽하고 곡의 밸런스가 너무 좋다.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속도와 과장되지 않은 악상 표현 등 가장 마음에 드는 연주이다. 2. Yepes 의 연주는 상당히 빠르고 정확하다. 여유있게 연주할줄 몰라서 그런것이 아니라는건 너무나 잘 알고 있고, Yepes 의 연주는 그의 해석대로 그대로 즐겨주면 된다. 트레몰로 한음한음이 치고 나오는 경험은 아주 인상적이다. 3. John Williams 의 연주는 빵점이다. 트레몰로를 듣고 있으면 불안하고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린다. 그런 최악의 연주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시는 듣고싶지 않다. 4. Segovia 의 연주는 언제나 그렇듯, 최고이다. 그는 테크닉을 한참 넘어선 경지에 있다. 음색 자체가 천상의 소리이고 여유롭고 아름답다. 5. David Russell 의 연주는 또다른 빵점짜리이다. 트레몰로가 엉망이다. 말발굽소리가 난다. 듣고싶지 않다. 6. 안형수 의 연주는 약간 불안하다. 베이스와 트레몰로가 살짝 따로 노는 느낌이 든다. 7. 고의석의 연주는 상당히 멋지다. 정확하고 깔끔하며 곡을 정확히 해석하고 있다. 음색도 시원하다. 마음에 든다. 8. 카오리의 연주는 나름 개성있다. 그렇게 보고 들어서그런지는 몰라도 좀 얇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손가락 굵기가 남자와 달라서 그런지도..
이런저런 돈, 명예, 권력, 인간관계들, 경력들, 등등,
모두 아주 중요하다. 결코 냉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자존自存 에 관한 일이 생겼다고 하면,
그것들은 나를 지켜줄수는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나'를 보호하는데 무기력한 한계를 느껴본 적이 있는지,
순간적일수도 있고 오랫동안 지속되었을수도 있지만,
그 무력함의 경험은 꽤나 오랜기간동안 스스로에게 고통을 준다.
그럼 도대체 나는 무엇을 가지고 나를 증명할 텐가. 하나하나씩 벗겨가면 남는 것은 이런 無 emptiness 뿐인가.
그런, 아주 허황되고 참담할 정도로 무의미한 경험들은, 나를 얼마나 변화시키는가,
찬바람 쌩쌩부는 거리에서, 그 거리가 아무리 낯익은 곳이더라도, 심지어 내 방 안이라도, 나 스스로가 낯설어지는건 어떻게 설명할 건지,
그렇게 쌓여진 아주 바싹 말라버린 건조한 마음으로 보았던 세계가, 自我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던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리석을 뿐이다.
무無에 관한 감정에는 공감共感 하지 않으려 한다. 공감하면 그 타인의 감각 만큼 더 비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기타 레슨을 받았다.
알함브라의 추억 을 배웠다.
선생님께 트레몰로가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받았다.
왼손 운지법을 많이 배웠고
악상의 연결만 더 노력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수많은 방어기제들 중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어기제는 몇개 안된다.
승화 sublimation 이 그중 하나이다.
나중에 들어도 혼자 감동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녹음이라도 해놓아야겠다.
캐린 듄, 석가와 예수의 대화 中
* 아주 훌륭한 비교종교학 책인 석가와 예수의 대화 中 에서, '기적' 에 관한 대화이다. 종교는 분명히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생각들만으로는 너무나 거대한 삶의 근원적 문제들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문제는 인간의 한계를 어떻게든 넘어보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기적' 의 이미지를 끌어들일수밖에 없다.
..
예수 : 석가여, 당신은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삶이나 생각이나 사랑이 어떻게 처음에 나타났겠습니까?
내 자신으로 말하면 삶은 여러가지의 놀람과 예기치 않은 선물이나 손님으로 가득찬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명절을 맞이하는 어린애의 기대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이런 기대가 있다면 기적도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석가 : 그것은 확실히 황홀할 정도의 견해입니다. 그러나 나는 육체의 병을 고쳐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몇 개의 상징적인 치유를 통해서 사람들의 희망을 지금까지 꿈꿀 수 없었던 높은 상태로 올립니다. 그렇다면 명절을 맞이할 수 없는 고통당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염병, 기근, 전쟁, 살인으로 죽어가는 수만명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 자신의 삶 을 통제할 수 없는 음주 중독자들과 마약 중독자들, 희망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상이 된 사람들, 굶주려 죽는 사람들, 고독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집단 수용소와 불타는 유대인 거리에서 죽어갈 당신의 국민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인간의 숙명인 죽음 자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모든 사람들이 삶에 놀라지 않고 닥쳐올 희망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믿겠습니까?
왜 당신은 이렇게 현혹된 대중에게 잔인하고 성난 '운명' 이라는 괴로움의 잔을 그대로 제시하지 않습니까?
예수 : 기대(expectation) 은 괴로움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진정한 희망은 그렇지 않습니다. .. 진정한 희망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마음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를 실망시킬 수 없습니다. 진실한 희망-무한으로 열려있는 희망- 을 가진 사람은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석가 : 당신의 행위가 대중을 기만하는 환각을 더욱 조장할 때에도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내 자신의 마음이 옳았음을 이제야 알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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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사람들이 나의 신호를 계속해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육체보다 더욱 아름다운 언어를 알 수 없습니다. .. 불안과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 행복이라는 개념, 웃음과 사랑을 상상해 보십시오. 나는 이렇게 좋은 소식을 철학의 죽은 언어로(the dead language of philosophy)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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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들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어떤 '기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석가는 기본적으로 제자들에게 기적을 행하지 말도록 가르쳤다. 기적은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예수는 여러 기적들을 행하였고, 그것이 추종자들의 수를 늘리는데 기여하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예수가 기적을 행한 이유를, 육체적 언어를 사용해서 사람들로 하려금 '구원' 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들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방식은 옳은 것인가? 형체가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구원' 을,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변환해서 제시한다는 것.
그것은 사실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음 구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석가에게 가질 수 있는 의문이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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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당신의 메세지가 너무나 빈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존재가 고통이며 고통의 원인은 욕망이며 욕망은 중도中道를 걸음으로서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절름발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들이야말로 내 가르침에 쉽게 응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석가 : 절름발이들은 고통을 통해서 전생前生의 나쁜 결과를 보상하며 언젠가는 내 말을 이해하고 응답할 수 있는 상태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
예수 : 그렇다면 내 길만이 위험스러운 것은 아니군요. 내 길은 용서의 전파(transmission of forgiveness)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길이 모든 인간에게 참된 것이라면 그것은 재생再生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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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 : 당신의 치료 방법의 근본적인 방법인 사랑의 선물-당신이 용서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로 실패할 수가 없다는 것이고, 내 치료 방법의 근본적인 주장인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the opportunitiy of finding enlightment) 도 절대로 실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가지가 모두 삶의 실패할 수 없는 근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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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 구원은 가능한 것일까? 너무도 쉽지않은 문제이다.
어떻게든 피하고만 있었다고 한다. 꿈에서도 손사레치며 떠나곤 했으니까.
같은 날씨,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어도 마음상태에 따라서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고 천국을 경험할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붙잡아서 생의 공허함을 메우려는, 잊으려는, 그런 시도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그것을 붙잡는다고 해서 근원적인 공허가 없어지겠나. 다만 마약처럼, 진통제처럼, 순간을 모면하고 잊을 뿐이다.
고독도 마찬가지이다. 온전히 누군가가 혼자 있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말인가. 어차피 타인과 연결되어있고 자연과 연결되어 있고 우주와 친구이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신경다발들에 쓰여있을지모를 인상들, 기억들, 이런저런 감각의 기억, 그런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생각과 느낌을 결정한다고 할 때,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기를 바라면서, 자기 자신에게 진실과 거짓말을 섞어서 궤변을 늘어놓으면, 아주 조금쯤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어지러울정도로 공허한, 아침에 일어나서 싸늘한 바람을 느낄 때의 그 기분만큼은 도저히 어떻게 속여볼 수가 없지 않은지.
그런 마음과 머리와 지친 팔다리를 가지고 꾸역꾸역 일을 하고 걸어가고
감각기관으로 이것저것 보고 듣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가는 또 졸려워하고,
어떻게든 억눌러 보는것이 성공한 날이면 스스로 뿌듯해하며 완전히 굳어버린 정신 그걸 하나 믿고 살아왔다고 자랑할 건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신해철의 'cynical love song' 은 이전부터 마음에 든 곡이다. 적나라한 진실을 보여준다. 삶의 이중성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 앨범 6번곡이 cynical love song 인데 12번이 dear my girlfriend 라는 달콤한 곡이다. 인생은 그렇게도 이중적인 메세지를 자기자신에게 전달한다. 7번 수컷의 몰락은 아주 가슴아프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니까. 외상적 기억의 재경험은 분명히 유쾌하지 않다. 나에게, 계속 설명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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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야
..by 정석원/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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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중요한 언급이라고 생각한다.
키리코의 그림 '거리의 신비와 우울(1914)'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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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易假道難
by stapelia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
그러므로 아난다여,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의지처로 삼아라. 다른 의지처를 찾지 말아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처로 삼아라. 그 밖에서 의지처를 찾지 말아라. 모든것은 변하여 가니 게으름없이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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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자네의 '想像.. by INHYO at 11/07 후자는 비트겐슈타인을 .. by stapelia at 10/30 두 앨범 모두 내게도 소.. by 재성 at 10/30 잘~ 읽어보아!! 심오한 .. by stapelia at 10/19 당췌 뭔 소린지 알수가 .. by 012 at 10/18 나일론 줄이라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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